12도 차이.. '냉방' 버스야, '냉동' 버스야?

2006. 8. 23. 16:0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입추가 지난 지 이미 한참이지만 아직 서울 도심은 섭씨 30℃를 웃도는 폭염을 발산하고 있다. 에어컨 펑펑 터지는 은행이나 백화점만 가도 피서가 따로 없지만 이는 거꾸로 '냉방병'이란 현대병을 낳았다. 이처럼 한여름을 무색게 하는 에어컨 냉기는 대중교통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서울 노선버스와 지하철을 직접 타고 대중교통 냉방 실태를 점검했다. <오마이뉴스 편집자 주>

[오마이뉴스 김화영·허환주 기자]

▲ 버스 안 온도계 눈금이 섭씨 19도를 가리키고 있다.(왼쪽 사진은 자료사진)
ⓒ2006 김시연·허환주

16일 오전 7시 상암동에서 정릉까지 가는 노선버스를 탔다. 이른 아침임에도 30℃를 오르내리는 후텁지근한 날씨에 버스를 기다리는 것도 짜증났지만 일단 버스에 오르자 그런 마음은 사그라졌다. 시원한 에어컨 냉기가 후텁지근한 날씨를 잊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기분 좋게 맨 뒷자리에 앉았다. 많은 사람들을 태운 버스는 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실내를 시원하게 유지해주었다.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땀에 젖었던 옷을 시원하게 말려 주었다.

하지만 그런 좋은 기분은 잠시, 버스를 탄 지 5분이 지나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시원함을 지나쳐 슬슬 추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간사하다고, 고맙던 에어컨 바람이 이젠 머리를 아프게 하는 고통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30분 경과] 밖은 31℃인데 버스 안은 19℃!

도대체 버스 안 온도는 몇 ℃나 될까?

미리 준비한 온도계로 온도를 재보니 막대온도계의 붉은색 알코올은 섭씨 19℃를 가리키고 있었다. 밖의 온도가 31℃이니 실외와 실내의 온도차이는 무려 12℃. 시원하다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온도 차가 클 줄은 몰랐다.

서울 노선버스는 모두 이렇게 온도가 낮을까 궁금했다. 다른 노선버스들도 타보았더니 19℃ 정도는 아니었지만 대부분 22℃에서 24℃를 유지하고 있었다.

실내온도가 19℃인 버스를 30분 넘게 타다보니 추위를 견디다 못해 결국 팔짱을 낄 수밖에 없었다. 머리에서 뿜어져 오는 에어컨 바람을 피해 편하게 앉아갈 자리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승객들도 대부분 팔로 어깨를 감싸던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가방을 자신의 팔 위에 얹어 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추운데도 어느 누구 하나 운전기사에게 에어컨 좀 꺼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버스 승객 박아무개씨는 "춥긴 하지만 막상 운전기사에게 춥다고 에어컨 좀 꺼달라고 말하기가 남보기 부끄럽다"고 말했다.

운전기사는 승객이 에어컨을 꺼달라고 말하면 끄고, 켜달라고 하면 작동시킨다. 하지만 강·중·약 3단계로 밖에 조절이 안 되는 에어컨 때문에 승객들의 불만은 계속 나온다고 한다.

버스운전 20년 경력인 운전기사 이아무개씨는 "민소매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 승객들은 에어컨을 꺼달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정장을 입은 남성들은 에어컨이 꺼져 있으면 켜달라고 요구한다"며 모든 승객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 에어컨 풍량 조절이 불가능한 버스(왼쪽)와 승객이 직접 조절할 수 있는 버스(오른쪽)
ⓒ2006 김시연·김화영

[1시간 30분 경과] 머리가 아프고 속은 울렁울렁~

40여분 만에 추위로 짜증이 극에 달했다. 팔짱을 껴도 추운 건 매한가지였다. 내려서 좀 쉬다갈까 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결국 창을 열고 더운 공기를 버스 안으로 끌어들였다.

겨우 살 것 같았지만 그것도 잠시, 옆 승객이 더우니깐 창문을 닫으라고 말한다. 옆 승객은 신사복 차림이고 에어컨 바람을 직접 받지 않으니 더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창문을 닫고 다시 얼음창고 속으로.

1시간 30여분 만에 겨우 종점인 정릉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고 더운 공기를 맞으니 좀 살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너무 오래 에어컨 바람을 직접 맞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1시간 넘게 추위에 '달달' 떨면서 노선버스를 타보니 '냉방버스'가 아니라 차라리 '냉동버스'였다.

실내외 온도 차 큰 버스, 냉방병 불러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정기석 전문의는 "나도 얼마 전 버스를 탔는데 너무 추웠다"면서 "19℃는 굉장히 낮은 온도여서 바깥과의 기온차 때문에 감기에 걸릴 위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정 전문의는 "버스를 잠깐 타는 것은 괜찮으나 한두 시간 정도는 냉방병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라며 "에어컨 온도를 적정히 높여 26℃ 정도로 맞추고, 에어컨 필터를 자주 청소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버스 승객들은 냉방병 예방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정 전문의는 "얇은 옷을 입은 승객은 겉옷을 챙겨 버스 안에서 입는 것이 좋다"며 "특히 COPD(만성폐쇄성폐질환)나 천식환자는 바람을 직접 쐬면 기존의 병이 악화되니 에어컨 바람이 직접 나오는 곳에는 앉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하철 약냉방칸 1년째, 호응 좋아

그렇다면 지하철은 어떨까? 지하철 냉방 체험을 위해 오후 2시쯤 집을 나섰다.

바깥 기온은 섭씨 31.5℃. 더운 공기에 금세 몸이 지치는 것 같았지만 그것도 잠시. 전동차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금방 시원해진다. 객차 안의 기온은 24℃였다.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면서 한 바퀴 정도 돌아보았는데 대부분 이와 비슷했다.

1호선은 24~25℃, 2호선은 사람들이 많을 때는 26℃, 적을 때는 25℃였다. 3호선은 26℃, 4호선은 23~25℃로 대부분 비슷한 수치였다. 지상으로 연결된 종로3가역 구내는 30도가 넘어 더위를 느끼게 하기도 했지만, 지하에 있는 플랫폼은 27~29℃ 정도로 적당하게 느껴졌다.

▲ 지하철은 강한 냉방을 원하지 않는 고객들을 위해 약냉난방칸을 운영하고 있다(왼쪽). 지하철 문에 붙어 있는 안내문. 춥거나 더운 고객은 민원을 제기할 수 있다(오른쪽).
ⓒ2006 허환주

이제는 5호선. 조금 춥다고 여겨질 때쯤 방송이 나왔다. 춥다는 고객의 민원이 들어와 실내 온도를 조금 높이겠으니 양해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출입문에 붙어 있던 안내문에는 "지금 차내가 너무 더우신가요? 아니면 너무 추우신가요?"라는 문구와 함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는데, 누군가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다음 노선으로 잡은 것은 6호선. 열차에 오르니 '약냉방칸'이라고 쓰인 게 보인다. 일반 냉방칸이 25℃였는데, 약냉방칸은 2℃ 높은 27℃였다.

얇은 옷을 입은 내게는 약냉방칸 온도가 적당하게 느껴졌다. 냉방에 대한 의견을 바로바로 전할 수 있고, 일반 냉방칸과 약냉방칸으로 나눠 승객이 선택할 여지가 있어 좋았다.

지하철 냉방시스템이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약냉방칸이 도입된 것은 지난해 여름부터다. 서울시 도시철도공사는 강한 냉방을 싫어하는 고객들과 노약자, 어린이들을 위해 지난해 6호선, 8호선에 시범적으로 약냉방칸을 설치했고 올해는 5~8호선 전 노선으로 확대한 것. 약냉방칸은 냉방온도센서를 2℃ 정도 올려 일반 냉방칸보다 높은 27℃ 이상이 되어야 냉방기가 돌아간다.

서울도시철도공사 정비지원팀 강지명씨는 "시범 시행 후 직접 이용한 승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약냉난방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80%, 전 호선으로 확대하는 것에 찬성하는 의견이 76%여서 올해 확대한 것"이라고 밝혔다.

버스 냉방 문제, 2008년까지 기다려라?

▲ 지하철 객차 에어콘은 자동온도조절센서로 작동한다.
ⓒ2006 오마이뉴스 김시연

그러면 서울 노선버스는 냉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현재 간선·지선 등 일반 노선버스는 지하철처럼 자동센서로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다. 또한 각 좌석마다 에어컨 세기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버스가 대부분인 실정이다.

서울시청 버스지원반 유용식 주임은 "과거에 출시된 버스에는 (좌석마다) 에어컨 바람을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지만 최근 출시된 버스에는 그런 장치가 없는 실정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서울시도 개선안을 고려하고 있다.

유용식 주임은 "현재 시내버스 고급화와 관련해 문제점을 조절하고 개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노력의 하나로 시내버스모델개발위원회에서는 2005년 6월부터 12월까지 교통전문교수, 교통학회, 녹색교통위원회 등이 모여 모두 8번 회의를 거쳐 시내버스 문제점 개선안을 내놓았다. 에어컨 문제도 포함된 개선안이 시행되는 2008년쯤에는 에어컨 문제도 일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민단체에서는 버스냉방시스템 개선안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요구한다.

에너지시민연대 기획연대팀 백선필 차장은 "냉방병 우려가 있는 만큼 시민들 건강을 생각하고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서도 대중교통 역시 실내적정온도인 26~28℃를 지켜야 한다"면서 "버스 에어컨을 강·중·약으로 조절할 수밖에 없는 기술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설계 자체에서 온도 조절이 가능하도록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버스운전기사들의 여름 제복은 긴소매 셔츠다. 한여름에도 냉기가 흐르는 노선버스에서 냉방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실제 많은 운전기사들이 냉방병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도 극심한 실내외 온도차에 시달리는 버스기사와 승객들에게 막연히 2년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기엔 여름이 너무 길다.

/김화영·허환주 기자

덧붙이는 글김화영·허환주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 ⓒ 2006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