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택의아메리카자전거여행] '인류 멸망'..우주신문 기삿거리나 될까

2006. 3. 31. 16:5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45)

오리건 주 베이커 시티에서 머무를 때 마지막 여정을 짜보니 엿새면 태평양까지 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지도에 밤에 머물 곳들을 표시했다. 흥분하기에 앞서 여섯 개의 고개에 신경 쓰였다. 그 중 세 개의 고개는 하루에 다 넘어야 한다. 중간에 마땅히 머물 곳이 없다. 섬터(Sumpter)와 팁턴(Tipton), 딕시(Dixie) 고갯마루. 모두 1500m가 넘는 준령들이다.

그런데 나는 하루에 다 넘었을 뿐 아니라 이 세 고개를 넘고도 160㎞를 달렸다. 이제 남은 고개는 세 개. 이제 닷새에 나눠서 넘으면 된다. 자신만만해진 탓에 데이빌(Dayville)이라는 곳에서 "조금 돌아가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시원의 절경을 볼 수 있다"는 식료품점 주인 스티브의 말에 넘어가버렸다. 그리고 무진장 후회했다.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에 따르면 데이빌이라는 곳에서 26번을 타고 60㎞ 가면 미첼(Mitchell)이 나온다. 나는 절경이 있다는 존 데이 화석지대를 돌아보기 위해 19번으로 새서 207번을 타고 삥 돌아와 미첼에 도착했다. 모두 125㎞. 65㎞를 더 돈 것이다. 더위와 바람, 오르막길, 전날의 피로가 누적돼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무리한 일탈이었다. 페달 밟기가 고통스러웠다.

절경 보고 가란 식료품 주인 말에 꼬여65km 돌아 '존 데이 화석지대'엘 갔다천만년 압축 '연대표' 시간의 질감이 무겁다하룻밤 잤으나 천년의 세월 흐른 듯

그래도 덕분에 시간여행을 했다. 궁극적인 여행은 존재의 조건에 대한 탐험이다. 도시와 마을에서 벗어나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우주 속으로 헤매는 것이다. 존 데이 화석 지대는 그런 곳이었다. 켜켜이 쌓인 지층, 한 층마다 천만년의 역사가 압축돼 있는, 거대한 지질학의 '연대표'를 굽이굽이 돌면서 나는 시간을 거슬러가고 있음을 느꼈다.

험한 준령 세번 넘고도 160km 질주

마치 부침개를 뒤집듯 천만년을 단위로 지각이 휘 까닥 변동한다. 이곳이 열대 밀림이었다는 사실, 브론토세레스(brontotheres)와 아미노돈트(amynodont)처럼 멸종된 포유동물이 여기에 쏘다녔다는 사실, 도저히 믿기 어렵다. 지금은 사막성 분지이기 때문이다. 마른 광선은 생명을 태워버린다. 그런데 열대밀림을 증거하는 나무와 동물들의 화석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인류의 역사도 언젠가는 저 한 층, 불과 10m도 안 돼 보이는 지층 하나로 압축되지 않을까. 이 화석들을 보면 인류가 영속하리라고 믿기보다는 지각변동으로 브론토세레스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그것을 최후의 심판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또는 자연적 순리로 받아들여야 할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의 의미를 묻게 된다. 무엇을 하든 어차피 저렇게 시간의 잔재로 퇴적하고 말 텐데. 세계 초강대국인들 오는 세월을 저지할 수 없다. 우주의 단위에서 보면 인류가 멸망한다고 해서 기삿거리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구만한 별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물며 내 개별적인 삶의 중단이야 말해 무엇 하랴. 우주 일보의 한 줄짜리 부음란에도 실리지 않을 것이다.

허무주의를 꼭 극복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도 우주를 이루는 전체의 한 부분이라고 믿는 것뿐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연계돼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렇다면 죽음으로 삶의 의미가 완성되지는 않겠지만 단절도 아니다. 더 큰 존재에 합류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미국을 횡단하는 것은 우주에서 티끌 같은 존재인 인간의 조건에 대한 은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기와 속도에 압도돼 좌절하기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 한 바퀴 한 바퀴에 의미를 두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다. 광대무변한 우주에 비춰볼 때 미국 횡단은 엄청난 성취가 아니다. 자전거타기는 긴 거리를 달려서가 아니라 자신이 페달로 밟은 몇 미터의 거리에도 성취감을 느낄 줄 아는 삶의 방법이다. 비단 라이딩뿐 아니다. 마라톤을 뛸 때 연도에 선 시민들이 손을 흔들어줄 때 왜 박수를 쳐줄까 생각해본다. 인간애와 연대감 같은 게 있겠지만 무엇보다 마라토너들이 인간의 숙명을 재연하는 위대한 연기자들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껴서가 아닐까.

이곳에는 온통 존 데이 투성이다. 존 데이 화석지대 외에 존 데이 마을, 존 데이 강, 데이빌… 그래서 그가 위대한 인물이었을 것으로 유추했는데 아니었다. 1810년 그는 아스토(Astor) 모피사냥 원정대의 일원으로 오리건에 들어왔다가 겨울이 다가오자 허기와 피로에 지쳐 동료 한 명과 뒤에 쳐졌다. 두 사람은 생선 내장과 뼈, 동물 가죽으로 연명하며 컬럼비아 강까지 갔으나 아메리칸 인디언에게 붙잡혀 얻어맞고 옷까지 빼앗겼다. 벌거벗고 아사직전의 데이는 다행히 탐험대에 의해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건강을 회복한 그는 다시 사냥 원정대와 함께 컬럼비아 강 일대를 방문했다가 정신이 나가 몇 개월 뒤 숨졌다. 주요 지형과 마을에 이름이 붙을 만한 인물의 일대기는 아니다. 하지만 역사가 항상 승자와 위인만을 기억하라는 법은 없다. 낙오자도 기려야 한다.

존 데이 화석지대는 몇 천년 전이나 똑 같은 모습일 것이다.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았다. 옷을 입고 존 데이 강에 들어가 수영 겸 목욕 겸 세탁을 했다. 옷을 벗고 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보는 사람이 없다. 자전거를 타고 남은 길을 가면서 옷을 말릴 심산이었다. 서비스 크릭(Service Creek)이라는 곳을 만나 강변에 텐트를 쳤을 때는 감쪽같이 다 말랐다.

'존 데이' 낙오자 이름도 지명에

진짜 신생대 3기에 들어온 것 같다. 브론토세레스가 풀섶에서 뛰쳐나왔어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한 숨을 내뱉으면 하루가 가는 것 같다. 하룻밤을 잤지만 천 년의 세월을 보낸 듯하다. 깊고 고요한 계곡이다. 시간의 질감이 그만큼 무겁다. 천 년이라 해 봤자 46억 살인 지구의 나이에 비춰보면 46만분의 일도 안 되는 시간이다.

서비스 크릭에서 미첼로 가는 길은 캔터키 주에서 해저드로 가는 길 못지 않게 험했다. 미첼에 천신만고 끝에 도착해 마을 입구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려는데 다 먹고 나오는 매트 스위니(Matt Sweeney)를 만났다. 그는 사이클복이 터질 만큼 배가 튀어나왔다. 너무 작은 옷을 입은 탓인지도 모른다. 시드니에서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이번 여행을 위해 사직했다. 입 주변에는 음식 부스러기가 묻어 있다. 나는 지금까지 만나는 라이더들을 빠지지 않고 사진 찍어왔지만 그를 찍지 않았다. 관심이 없었다. 안 본 걸로 치려고 했다.

여섯 개의 고개 중 다섯 번째 고개인 오초코(Ochoco) 고갯마루를 오르는데 쓰라린 땀이 눈에 들어가 눈을 뜰 수가 없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땀을 닦아내기도 어렵다. 힘겹게 넘어서 프린빌(Prineville)을 향해 가는데 멀리서 어렴풋하게 사람의 윤곽이 눈에 들어온다. 라이더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콩콩 뛰었다. 추격하는 것보다도 더 즐거운 일은 없다. 갑자기 없던 힘이 나와 페달이 빨라진다. 좇아가니 라이더다. 멀리 보이는 라이더들은 꼭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데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종종 라이더들은 뒤에서 따라오는 라이더들을 의식하면 자신도 모르게 가속한다. 이 라이더도 안 따라잡히려고 빨리 페달을 밟는 것 같다.

나는 자전거에서 일어나 선채로 페달을 세게 밟았다. 사람들은 바퀴가 작은 내 자전거에 추월 당하는 것을 이중의 수치로 여긴다. 점점 라이더의 모습이 커진다. 몸과 자전거가 눈에 들어온다. 헤진 사이클복 사이로 살덩이가 드러난다. 추월하면서 옆을 보니 매트였다. 나보다 한 시간은 먼저 출발했는데 따라 잡힌 것. 마지막까지 따라 잡히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는지 완전 탈진한 얼굴이다. 무자비하게 그의 자존심을 짓밟은 나는 바로 식당이 나오자 같이 쉬자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승자의 여유다. 나는 그가 불과 몇 달여 전의 나처럼 그냥 무모한 여행을 떠난 레저용 라이더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실 나보다 20일 일찍 버지니아 주의 요크타운을 출발했는데 따라 잡혔다.

이 식당에서 앤디와 캐런 서머스(Andy & Karen Summers)를 만났는데 이 두 사람도 워낙 뚱뚱한 거구여서 마치 얘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 같다. 매트와 서머스 부부는 알고 보니 일행이었다. 모두 과체중이라는 점에서 적합한 팀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같이 출발했지만 때로는 하루 먼저 가기도 하고 뒤따라가기도 하면서 함께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이 어떻게 한 팀이 됐는지를 물어보면서 나는 이들이 보기와 달리 비상한 산행경력의 소유자임을 알게 됐다. 매트는 애팔래치언 트레일과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1.5번씩 완주했다고 한다. 그는 평소에 운동을 전혀 안하고 살다가 체중이 견딜 수 없게 불어나면 이렇게 직장을 관두고 미국에 와서 반년씩 걷다가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가곤 한다는 것. 96년 애팔래치언 트레일을 걸을 때는 내가 번역한 책 <나를 부르는 숲>의 저자 빌 브라이슨을 만나기도 했는데 카츠는 못 봤다고 한다. 37살의 미혼으로 자유를 추구한다.

산정 헬기 뜨면 3천만원 내야

앤디도 애팔래치언 트레일을 종주했는데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트레일 종주에 대해 문의한 여성을 알게 됐고 급기야는 그 여성과 함께 트레일을 동행하게 된다. 그 여성이 캐런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때 매트도 산행에 부분적으로 합류해 이들과 인연을 맺었고 나중에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도 같이 갔다. 그 때 매트는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미 본토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 4421m의 마운트 휘트니의 정상에서 의식을 잃어 헬기로 긴급 후송된 적이 있는데 치료받고 의식을 회복하자 바로 그 정상까지 다시 걸어 올라간 강철 같은 사나이다. 보통 헬기로 응급치료를 받으면 청구서가 3천만원 가량 나오게 돼 있었는데 긴급 출동한 헬기가 캘리포니아 고속 순찰대 소속이어서 돈 한 푼 안 냈다고 하니 기 막히게 운 좋은 사나이이기도 하다.

해진 사이클복 사이로 삐져나온 살덩이의 매트체중 불으면 직장 관두고 반년씩 걷기·자전거여행뒤에 성조기를 꽂고 다닌다 애국심 때문이냐고? 차에 치이지 않거든!

앤디는 엔지니어이고 역시 엔지니어인 캐론은 미 국립항공우주국(NASA)을 다니다 이번 여행을 위해 관뒀다. 앤디는 성조기를 자전거의 뒤에 꽂고 다닌다. "조국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냐"고 묻자 "사람들이 나를 치어도 성조기는 안 칠 테니까"라고 답했다. 국기를 일종의 자동차에 대한 방패로 꽂고 다니는 것. 그는 "최근들어 미국에 대한 자부심을 잃어간다"면서 "특히 이라크 침략을 비롯한 미국의 대외 정책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는 프린빌 스태포드 호텔에서 합숙했다. 지금까지 투숙한 모텔 중 최고급이다. 78달러. 비싸서 안 들어가려고 했는데 매트가 고집했다. 그는 지쳐서 더 갈 수 없다며 혼자라도 들어가겠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사실 한 사람당 20달러도 안 된다. 한 방에서 부부와 두 남정네가 하루를 합숙했다. 새벽에 화장실 갈 때 살짝 보니 부부는 서로 껴안고 자고 있고 매트는 코를 골고 있다. 나도 내가 코를 고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