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택의아메리카자전거여행] 너, 마약할래?

2006. 3. 1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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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43)

몬태나를 지나 이번 여행의 아홉 번째 주이자 마지막에서 두 번째 주인 아이다호로 들어오면서 풍경이 확 바뀌었다. 원시림에 가까운 삼림이 펼쳐진다. 서쪽에서 오는 비구름이 캐스케이드 산맥을 가뿐히 넘고 로키 산맥에 2차 도전을 하다가 실패, 공중에서 우물쭈물하다가 힘이 빠져 빗방울이 돼서 떨어지는데 덕분에 아이다호가 촉촉히 젖는다. 나무가 잘 자라 삼나무들이 무성하다. 흠이라면 날씨가 변덕스러워 5분 뒤 날씨를 점칠 수 없다.

파월(Powell) 부근의 화이트하우스 야영장에 도착해 텐트를 치려는데 세찬 비가 내렸다. 모닥불을 지펴 깡통 스파게티를 끓여 먹으려던 차였다. 버너와 코펠을 집으로 보낸 뒤 그 동안 조리를 단념해왔는데 카를로스와 고르고 스페인 형제에게 '비법'을 전수 받았다. 그들은 조리기구가 없어도 매일 따뜻한 음식을 먹었다. 그 비결은 캔에 든 음식을 사서 모닥불 위에 통째로 올려놓고 끓이는 것이었다. 따로 그릇과 불 피울 도구가 필요 없다. 불쏘시개 감으로는 여행안내센터에는 미안한 일이지만 관광 안내 소책자들을 썼다. 성냥과 젓가락 한 벌만 있으면 되니 요긴한 방법이다.

우당탕탕 흐르는 록사강(거친 강) 야영장서감방 다녀온 문신투성이 거친 사내와 조우욕-단어-욕…남자끼리 놀려고 피신했단다맥주 계속 따더니 드디어 마리화나다른 세상서 깨어난듯 그의 눈이 땡글해졌다

그들이 김을 후후 불어가면서 스파게티를 먹는 것을 보고 당장 따라서 했다. 식료품점에는 캔에 든 음식 가짓수가 생각보다 다양했다. 아스파라가스, 옥수수, 콩, 스파게티, 소시지 등. 여행자의 간결한 삶이 풍요로워진다. 누가 그렇게 하고 있는 나를 보고 미국에서는 집 없는 거지들이 그렇게 조리한다고 일러줬지만 나는 "그게 어쨌다고?"라고 반문했다. 매일 등을 누이는 곳이 내 집이라는 점에서 집 없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이다. 차이가 있다면 내게는 한시적인 생활일 뿐이라는 것. 하지만 인생자체가 한시적이다. 근데 이 조리법에서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캔의 밑이 타고 위는 덥혀지지 않기 때문에 젓가락으로 꼭 저어줘야 한다는 점.

원시림 무성한 아이다호주

단점은 이렇게 비가 쏟아지면 불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잽싸게 나무를 한 단 해가지고 지붕이 있는 화장실로 튀었다. 천둥 번개가 요란하더니만 30분만에 거짓말처럼 날씨가 말끔히 개었다. 해질 무렵이어서 붉은 노을이 들었다. 루이스와 클락 원정대의 역사를 소개한 책자를 찢어서 불을 피우고 바라보니 옆으로 록사 강(Lochsa River)이 우당탕탕 흐른다. 록사 강은 인디언말로 거친 강이라는 뜻. 지금까지 묵은 곳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내 옆 사이트에는 픽업 트럭을 타고 온 두 남자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아까부터 텐트를 치고 있다. 처음 들어올 때 인사를 나눴는데 왠지 경계하는 표정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 일부러 자리를 잡은 것 같은데 내가 그 옆에 바짝 몸을 붙여온 셈.

미국을 여행하면서 바이크 라이더 외에도 다종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내게 관심을 두고 접근하는 사람들은 뭐랄까 조금 교양과 수준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살기 바쁜데 자전거 타고 가는 동양녀석에 대해 관심을 베풀 겨를들이 보통은 없다. 이 야영장에서 만난 해리와 바바라와 같은 사람들이 바로 접근하는 사람들이다. 남편 해리는 치과의사고 부인 바바라는 간호학과 교수다. 이들은 91살인 해리의 어머니 제시와 함께 이곳에 RV를 대놓고 한달 동안 자연 속에 푹 파묻혀 지낸다. 해리는 수채화를 그리고 바바라는 록사 강에서 플라이 낚시를 한다. 그림 같은 삶이다.

플라이 낚시는 파리모양의 인공미끼를 써서 플라이 낚시라고 한다. 핵심은 미끼를 흐르는 물에 띄우는 것. 물 속으로 집어넣는 게 아니다. 물을 따라 파리가 흘러가듯 미끼를 던지면 컷스로트 송어(cutthroat trout)가 공중으로 날아서 물로 내려오는 길에 미끼를 덮친다. 그 때 낚싯대를 잡아당겨야 하는 게 플라이낚시의 요체. 바바라는 20여가지가 넘는 플라이미끼를 가지고 있었는데 모양이 진짜 파리처럼 정교하게 생겼다.

이들은 자식은 없고 자식만큼 사랑하는 개 한 마리가 있다. 세 사람 모두 목에다 호루라기를 매고 개가 멀리 가면 호루라기를 불어서 불러들인다. 이 망할 놈의 개는 나를 보고 계속 짖어댔다. 그들은 아침에 뜨거운 커피와 과자 그리고 파인애플을 내게 대접했고 바바라는 아몬드와 무화과 열매 그리고 마쉬 맬로를 비닐 봉지에 담아놓았다가 여행할 때 먹으라고 건네줬다. 91살의 제시는 무사히 여행할 것을 기원하면서 내 볼에 입맞춤을 했다. 특별한 축복이었다.

그리고 돈과 론도 특별했다. 그들은 내 옆 사이트의 주인공들. 두 사람은 인근 도시에서 온 식당 요리사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미국을 횡단 중이라고 하자 한 순간 경계를 풀고 자신들의 텐트 사이트로 초대했다. 둘 다 63년생으로 나와 동갑. 론이 온 몸에 문신을 한데다 교도소를 다녀왔다고 말해서 잠시 움찔했다. 그러고 보니 미국 와서 전과자와 얘기한 적이 한번도 없는 것 같다. 그는 말끝마다가 아니라 한 단어에 하나꼴로 퍽(fuck)과 싯(shit)을 번갈아 썼다. 욕설이다. 한국의 조폭 영화를 보면 현실성 있게 묘사한다고 욕을 어색할 정도로 많이 섞는데 론은 그 이상이다. 그는 "You fucking wanna stone?"이라고 물었다. 씨팔 마약 한번 할래? 라는 뜻이다. 그 비싼 마약을 공짜로 주겠다니. 마다할 내가 아니었을 것이다. 한 십 년 전이었다면.

17살부터 머리 길러 허리까지

돈이 난리가 났다. "마약 좀 그만해, 그리고 쟤한테 좀 잘할 수 없어?" 그렇게 대조적이었다. 돈은 <시엔엔(CNN)>을 자주 본다면서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 질문을 하는데 내 머리가 뻐근했다. 그는 북한의 김정일이 정신적으로 안정돼 있느냐고 물었다. 미국의 식당 요리사한테, 그곳도 원시림 속의 야영장에서 예상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우리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맥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눴다. 돈은 자식이 여섯 명이라고 했다. 자기 자식 둘에 동거녀의 자식 넷. 동거녀는 자기보다 13살 연상. 론도 동거녀가 있다. 자식이 있느냐고 물으니 론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그러자 돈이 "너 있잖아"라고 따졌다. 론은 다시 없다고 말했는데 말에 힘이 없다. 돈은 "너 있잖아"라고 언성을 높였다. 론은 없다고 말하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둘 다 조금씩 이성을 잃어간다. 점잖은 돈도 론에게 전염돼 퍽과 싯을 쓰는 빈도가 늘어간다.

이들은 여자들을 피해 숲 속에서 남자들만 맘껏 맥주 마시며 웃고 떠들려고 텐트를 샀다고 했다. 이베이에서 100달러 주고 샀는데 집 한 채의 크기다. 사용설명서가 안 와서 3시간에 걸쳐 텐트를 가지고 씨름했다. 안 풀리면 맥주 한 병씩 마셔서 텐트가 다 세워졌을 때는 이미 취한 상태였다. 그 때 나를 만난 것. 그들은 그렇게 오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여자 생각 안 나느냐고 물었다. 라이딩만 해도 힘든데 여자 생각이 나겠느냐는 내 말이 뭐가 우스운지 이들은 허리를 접어가며 낄낄댔다. 나는 뻘쭘하게 있을 수 없어 따라 웃기 시작해서 셋이 한 30분은 웃은 것 같다. 두 사람은 눈물까지 흘렸다.

밤이 깊어가자 론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텐트 안에 가서 마리화나를 가져왔다. 돈은 그런 모습을 나한테 보여주는 게 못 마땅한 듯 론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미국에 마약 문제가 심각하다고 들었지만 실제 마리화나 피우는 걸 보는 건 처음이어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는 담배처럼 말아서 피는 게 아니라 찌그러진 깡통 속에 놓고 불을 붙여 연기를 들이마셨다. 몇 모금 흡입하니까 그대로 표가 났다. 론의 눈알이 땡글해지면서 마치 찬물을 뒤집어쓰고 자다가 깨어난 것 같은 표정이 됐다. 깨어나긴 했는데 다른 세상에 깨어난 것 같다. 더 이성을 잃어갔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론이 깨어 있었다. 그는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벌써 아침에만 네 병 째. 내게 다가와서 어제 미안했다고 사과하면서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17살 이후 자르지 않은 그의 머리카락이 땋으니 허리까지 내려간다. 그는 "사실 이 나라가 내 나라라는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남의 나라를 이렇게 횡단하는 네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늦게 일어난 돈은 햄 터키 샌드위치 두 개와 스포츠 음료 한 통을 싸 줬다. 그는 내게 한국에 돌아가서 우편엽서를 한 통 보내주면 평생 기념으로 간직하겠다면서 주소를 적어줬다. 내게도 그들은 특별한 하룻밤의 동행이었다.

세탁 겸 목욕 겸 록사강 잠수

로웰(Lowell)까지는 록사 강을 따라 끝없이 ㄹ자로 휘돌아 내려가는 길이다. 한국 같으면 매운탕, 보신탕, 산채비빔밥 집으로 온통 뒤덮였을 계곡에 인적이 없다. 지금도 이렇게 외진데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아이다호 지역을 근처의 오리건과 워싱턴 주로부터 독립시키면서 주지사를 물색할 당시에는 얼마나 더 외진 곳이었을까. 주지사를 하겠다고 나타난 정치인들이 거의 없었고 주지사직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 지역에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13.5m나 되는 RV차 몰고온 헌터 부부가 날 초대했다술욕심에 반병이나 마셨다 맛난 음식 갈망이 이토록 컸나아직 내 안으로 못 들어간 거다

로웰의 와일드 구즈 캠프장(Wild Goose Campground)에 텐트를 치고 록사 강에 비누 한 장 들고 목욕하러 갔다. 물론 옷은 벗지 않고 세탁도 겸해서 한다. 합성 세제인 비누와 몸의 때 중 어느 쪽이 강물을 더 오염시킬까. 미안한 마음으로 몸에 비누칠하고 수영을 한다. 머리도 감아야 하기 때문에 물 속으로 잠수했다. 물고기 떼들이 이상한 괴물의 침입에 놀라 흩어진다.

내 옆 사이트에는 RV가 주차했다. 샌프란시스코 근처에서 온 헌터 부부. RV는 길이가 13.나 됐고 뒤에 지프차도 매달고 다녔다. RV 한 대가 1억원이 넘는다. 60년에 독일에서 건너 온 이들은 여전히 독일식 액센트를 쓴다. 헌터는 관광업계서 일하다가, 부인 엘리노는 보석 골동품점을 하다가 은퇴한 뒤 RV를 타고 세상을 유람한다.

저녁 식사에 초대한 헌터 부부는 강변에 진녹색 식탁보를 깔고 그 위에 잘 닦인 금속 나이프와 포크를 놓았다. 피보다 붉은 85년산 리버벤드 멀록 포도주를 땄다. 그리고 브로콜리를 곁들인 스파게티를 RV 안의 부엌에서 요리해 내왔다. 깡통에 든 즉석 스파게티와는 현격한 차이다. 해질 무렵의 근사한 저녁이었다. 나는 술 욕심이 나서 거의 반 병 이상을 내가 마셨다. 그리고 취기로 숨이 가빠져서 텐트 안에 누웠을 때 스스로 못 마땅했다. 기껏 여행으로 맛난 음식과 좋은 술에 대한 갈망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닌가. 내핍을 통해서 고작 배우는 게 풍요로운 소비에 대한 향수인가. 그렇다면 나는 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거다. 그럼 안 되지. 앞으로는 주는 대로 다 받아먹지 말자.

hongdongz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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