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76단' 30돌 연출가 기국서·기주봉 형제

2006. 2. 2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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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국서(54)와 기주봉(51)은 형제다. 형은 한국의 현대연극을 대표하는 연출가이고, 동생은 선이 굵은 성격파 배우다. 작은 키에 날카로운 눈매까지, 겉은 닮았지만, 속은 천양지차다. 형이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라면, 동생은 조금은 헐거운 낭만파다. 그런 형이 상임연출을, 동생이 대표를 맡고 있는 극단76단. 1976년에 세웠다고 76단이니, 벌써 만으로 서른살이다.

"유신 시절의 도피처 같은 곳이었죠. 지하에 모여서 가리방(등사판의 일본말)을 긁으면서 뭔가를 획책한다는 느낌, 그리고 자유. 그때의 그 침울하지만, 꿈틀거리는 정서가 저는 좋았어요."(기국서)

대표적 실험작 '관객모독' 등 무대

연극을 먼저 시작한 것은 동생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극반 활동을 했던 기주봉은 극단76단의 원년 멤버. 당시 극장은 신촌 대현동에 있었다. 기국서는 "동생이 불러서 그야말로 슬리퍼 끌고 가봤더니, 시장통 배추 ��는 냄새와 가리방 냄새가 너무 좋아" 눌러앉은 경우다.

"76단은 관조하고 분석·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고 파괴하는 자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보다 날카로운 손과 이빨을 가질 것이다." 10개의 선언적 문구로 이뤄진 '극단76단의 기본 성격과 방향'은 호기로운 다짐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창단 2년 뒤인 1978년, 창립멤버들이 우루루 빠져나가자 기국서는 자연스레 극단을 책임지게 됐다.

동생은 주요 공연마다 주연 배우를, 형은 연출을 맡았다. 형은 억압적이었고, 동생은 반항적이었다. "대구 공연이었나? 지금은 기억이 안 나는데, 형이 나보고 계속 뭐라고 하는 거에요. 연습 도중에 대사를 하는 것처럼 악을 썼죠. '도대체 왜 그래, 형' 하구요."(기주봉) 치고받고 싸운 적도 여러번 있단다. 지금도 형은 동생에게 "위대한 배우가 될 생각을 해야지, 임마"라며 기를 죽인다.

창단 30주년인 올해에는 <관객모독>(3월16일~5월14일)을 필두로, <리어왕>(5월10일~14일),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6월초) 등을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책자도 발간하고 세미나도 기획하고 있다.

연극의 고정관념을 깨고 극장과 관객의 관계를 재정립한 <관객모독>은 76단의 대표적 실험극이다. <리어왕>은 10년 전의 빚을 갚으려는 시도다. "95년 예술의전당과 함께 했던 <미친 리어>가 가장 아쉬움에 남는 작품이에요. 그때 동생이 '리어'를 했거든요. 리어를 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젊었던 거죠. 어떻게든 올해는 빚을 갚으려고 합니다."(기국서)

"연극으로 돈벌어 연극에 투자할 것"

76단 출신의 작가 겸 연출가 김낙형(36)씨의 연출로 만들어지는 <검둥이와…>는 '제2의 새뮤얼 베케트'로 불리는 프랑스의 천재 작가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의 작품이다. 이로써 76단은 <로베르토 주코>와 <서쪽부두>에 이어 콜테스의 작품을 3개나 무대에 올리게 됐다.

"연극으로 돈을 벌어 연극에 투자할 수 있는 극단을 만들겠습니다. 문화전쟁에서 이기려면 결국 훌륭한 작가가 나와야 해요. 극단 대표로서 멋진 작가를 찾아내는 일을 할 겁니다."(기주봉)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햄릿 시리즈' 시대 풍자…가난과 저항의 미학

'극단76단' 이 걸어온 길

극단76단은 1976년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김태원(53·무용평론가)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신촌에 전용극장을 갖고 있었으며, 개관기념공연은 <마지막 테이프>(새뮤얼 베케트 작)였다.

"80년대에는 극단이 난파선처럼 흘렀다."(기국서) 대학로로 옮겨왔지만, 기나긴 '주거부정'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사실 올해 목표 중의 하나가 "극장 한 칸" 마련하는 것이었는데, 아직 여의치 않다. 다시 신촌역 앞으로 갈 수 있을지, 서대문구청과 논의 중이다.

80년대의 대표적인 작품은 <햄릿시리즈> 같은 정치극이었다. "전두환 정권이라는 쇼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90년대 들어 군부독재가 청산된 뒤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박근형 등 젊은 연출가들과 함께 <지피족> <미아리텍사스> <아스피린> <말똥가리> <훼미리바게트> <쥐> <만두> <대대손손> 등의 창작극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가난과 저항의 미학'이라는 극단의 성격을 굳혔다.

76단은 유서깊은 극단이면서도 스스로 권력이 되지 않고 연극계의 언더그라운드로 일관해 왔다. 이는 그들의 무정부주의적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연극평론가 안치운은 <기국서론:차가운 대지, 뜨거운 욕망>에서 "연출가 기국서는 일종의 평등주의 내지 무정부주의적 집단의 수장"이라며 76단의 작업이 "반체제, 반문화, 반기성적이라는 정의(<한국 소극장운동, 70년대 이후의 맥>)에 동의한다"고 평한 바 있다.

이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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