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홀리데이'의 황대철 역 이얼

2006. 1. 1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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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홍성록 기자 = "이렇게 일찍 인터뷰도 합니까? 이른 시간이라 적응이 잘 안 되네요."

자리에 앉으면서 이렇게 읊조리는 이얼(43)은 오전 인터뷰가 적응이 안 되는 눈치다. 그의 생각으로는 '아침 댓바람'부터 진행하는 인터뷰에 주파수를 맞추기가 힘든 모양.

"다른 배우들보다는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 배우로서의 일정은 대부분 오후에 시작해서 아침에 하는 인터뷰가 좀 생경하네요."

적응 안된다는 그를 붙잡고 '홀리데이'(감독 양윤호, 제작 현진시네마)에서 맡은 교도소 방장 황대철 역에 대해 물었다.

이 노련한 배우는 정신이 없다고 말하다가도 배역 얘기가 나오자 술술 말의 실타래를 풀어낸다. 이얼은 1988년 발생한 지강헌 사건을 모델로 한 영화 '홀리데이'에서 지강헌을 극화한 인물 지강혁(이성재 분)이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의 방장이다. 특사로 나가려고 교도관들을 매수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하는 비열한 인물.

"촬영 들어가기 5일 전에 캐스팅됐어요."

이얼은 캐스팅 과정부터 입을 뗐다. "'홀리데이'는 오랜 전부터 기획된 영화이고 이미 배우 강성진 씨가 황대철 역을 맡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캐스팅에 문제가 생기면서 저한테 배역 제의가 왔어요. 그렇게 끌리는 배역도 아니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역할을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 많이 했습니다."

솔직한 답변이다. 그가 이런 악조건에도 제의를 수락한 것은 이미지 변신이라는 배우로서의 숙명(?) 때문이었다. 전작들을 통해 이얼은 세상의 어떤 험난한 풍파도, 거친 인생사도 그저 너털웃음으로 포용할 듯한 선한 이미지로 박혀있다.

이얼은 "배우가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져 버리면 배우생활에 문제가 많다"면서 "기회가 되면 바꾸려고 했는데 기회가 빨리 왔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캐릭터 분석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들어간 황대철 캐릭터는 양윤호 감독과의 논의를 통해 완성됐다. 그래도 이번 역할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가 보다.

"촬영 중 양 감독과 황대철 캐릭터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완전히 조폭 수준으로 갈 거냐, 아니면 양아치 정도로 마무리할 거냐를 놓고 고심했어요. 저는 세게 가자고 했죠. 그래야 나중에 황대철이 변하는 모습과 대비를 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양 감독은 황대철 역할이 너무 무겁게 가면 작품 자체가 어두워진다고 해서 양아치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래도 이얼은 황대철을 조폭 수준의 악역으로 묘사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양아치로 가서 서운하냐"는 말에 "다음에는 제대로 된 악역을 할 기회가 오지 않겠느냐"면서 씽긋 웃었다.

그는 지강혁과 탈주하면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황대철에 대해 "황대철이란 인물은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을 뿐이지 인간적으로 보면 외로운 인물"이라면서 "사회에는 황대철보다 더 나쁜 인간들이 더 많지 않으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는 '홀리데이'를 찍는 동안 술잔을 기울이며 후배 연기자들과 영화,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어 좋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배우 이얼을 논할 때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를 관객들의 머리 속에 각인시킨 역할도, 배우 스스로 맘에 들어 하는 역할도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성우 역할이기 때문이다.

"'와이키키…'를 찍으면서 이런 영화 10편만 하면 배우로서 만족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만큼 이얼에게 성우는 맘에 쏙 드는 배역이었다. 이얼은 "성우를 연기할 때는 연기하지 않고 담담하게 하고 싶었다"면서 "지금 성우 역할을 다시 한다면 또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얼은 "나이가 들면서 인생에 대한 생각도 바뀌는데 같은 배역을 연기를 해도 다르지 않겠느냐"면서 "다시 성우 역을 맡는다면 더 밝게 할 것 같은데 그 때만큼 잘 할 자신은 솔직히 없다"며 웃었다.

오랫동안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이얼은 연극에 대한 사랑은 여전했다. 그렇지만 "너무 오래 떠나 있어서 다시 무대에 선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고 고백했다. "감각이 떨어진 면도 있고 이제 긴 대사 외우는 것도 자신 없다"고도 했다.

이얼은 "영화 홍보하기 위해 하는 인터뷰는 재미있어야 하는데 재미있게 말하는 것이 힘들다"며 "술자리에서는 내가 꽤 재미있는데…"라며 함께 자리한 매니저에게 "그렇지 않느냐?"며 되묻기도 했다.

매 작품마다 존재감을 뿜어내는 이 배우의 연기 인생에 '홀리데이'가 터닝포인트로 작용해 이얼이 더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선보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sungl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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