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항공의 선각자 조경연

2006. 1. 1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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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해군 항공의 선각자로 불리는 고 조경연(趙敬衍, 1918~1991년) 해군초대 항공대장의 고향은 전남 강진군 성전면 신안마을이다.

강진군 성전면 신안마을 전경, 풍양 조씨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영향에서인지 성전면 소재 성화대학은 항공관련 특성화 대학으로 발돋움하고 있어, 조경연 항공대장의 발자취와 생가복원 유물전시 등 그의 고향에서의 업적을 기리는 것도 지역사회와 과학문화 발전을 위한 한 기틀이라 생각된다.

조경연 항공대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상항공기 해취호(海鷲號)를 제작했고 이어 서해호(誓海號), 제해호(制海號) 등 모두 8대의 수상 및 육상항공기를 제작해 그 중 7대를 성공시킨 해군항공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다.

이러한 창의력과 도전정신은 후진들의 표상이 되어 최근 조 중령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이 경북 포항시 소재 해군부대에 들어서 '경연관'이라 불리고 있다.

2004년 4월 문을 연 경북 포항 '경연관' 내부. 조경연 중령의 연보와 해군항공 관련 게시판

월출산을 배경으로 한 성전 신안마을에는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가족들과 지인들이 생존해 있다. 오래된 생가에는 조 중령의 며느리가 살고 있으며 조카 중의 한 명은 면 소재지에서 오토바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풍양 조씨 일가가 대부분인 신안마을은 쌍효각(雙孝閣) 한천(寒泉) 등 유적이 남아 있으며 인근 월각산 아래로는 청자골 달마지마을이라 불리는 대월마을이 있다.

조경연 중령의 항공기 제작 역사는 그가 뛰어놀던 성전면 신안마을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치하 비교적 명문 가정에서 태어나 끊임없는 창의력과 도전정신으로 여러 과학 경진대회에서 수상을 하며 손재주가 좋아 10대 중반에 이미 소형 비행기를 손수 제작해 시험비행을 했다고 한다.

조경연 해군초대 항공대장 생가의 본채. 강진군 성전면 신안마을에 있다

손재주 좋아 어려서부터 비행기, 배 등 만들어

이 마을 주민에게서 채록한 조경연 중령에 대한 일화를 정리해 보았다.

-어려서부터 비행기를 만들었다고 하던데 어떻게 비행기를 만들었을까요.

△그, 어떻게 그랬냐 하면……. 짐차엔진, 짐차엔진, 그 것 갔고 했는디……. 무거워……. 그 뜨다가 못 뜨고는 그냥, 질 구렁(구덩이)에 넣어 버렸어……. 성공을 못했제.

-비행기의 모양은 어떠했을까요.

△아, 목수가 있어 나무로 비행기를 만들었제. 날개는 대쪽(대나무)으로……. 군대 들어가기 전에……. 동네 사람들이 재주꾼이라 했제. 집이 부자였어.

-사람들(구경꾼)이 많았나요.

△많이 왔제. 수백 명인 것 같아…….

-어디서 비행기를 띄웠나요.

△저그, 저 영풍리 들어가는 데, 그 앞, 강변(현재 하천)에서 그랬제.

-비행기에 사람이 탔나요.

△그랬제. 사람이 탔어. 그(?)-가 탔제…….

-탄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나요.

△엉, 다치지는 않았제. 하천에 떨어졌는디, 뜰라다가 못떴제……."

나중에 들은 또 다른 주민의 이야기로는 한 전봇대 거리만큼이나 떴다고 한다.

-그 때 그 양반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그 양반이 나보다 한 두 살쯤 더 묵었제(들었제)……. 그니깐 내가 한 열두 살 때쯤이었을까……. 그 양반은 한 열네 살 정도 되었다고 봐…….

-그 분하고 친하게 지내셨나요.

△아, 친했제….

-어렸을 때는 어땠나요.

△지상스런(신비스런) 일을 잘했제……. 배를 맨드러(만들어) 가지고 저절로 가게끔 하고, 종이 비행기며, 래디오(라디오)도 만들고……. 나중에는(나이 들어서는) 정미소를 했제. 낚시도 좋아하고, 자동차로 특허(차동장치)도 받고, 그것만 알제…. 우리 나이에는 그 양반이 어떻게 군대에 가고….(그런 건 잘 몰라)

-활주로를 만든다고 울력도 했다면서요.

△울력, 했제….

한 주민의 이야기로는 볏짚 가마니를 깔어 비행기가 가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조경연 중령의 낡은 생가에는 며느리인 오순화씨의 명패가 달려 있고 곳 간에 모아놓은 집안의 유물들로는 조 중령과 관계된 사진이며 일상도구들이 모아져 있다.

오래 전 사용한 듯 싶은 태극기, 비행용 구명조끼와 바지, 비행 작전도, 진해기계창 표지, 기계기구, 제도기, 저울, 실용신안 특허내용(1982년), 안경, 복권, 막내아들이 보낸 편지, 가족의 결혼식 사진과 직계존속의 초상화, 달인대관(達人大觀)이라 써진 액자 등이 있었다.

초라한 생가 복원과 업적 기리는 작업 있어야

생가에 보관된 유물들, 진해기계창 표지

다음은 마을의 다른 주민(71세)과의 이야기이다.

-비행기의 모양은 어떻게 기억나십니까.

△쇠와 나무로 만든 것 같애.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 비행기는 전봇대 하나 정도 날았어. 기술자라……. 그 때는 성공하지 못했는데, 포항 간다 해놓고 거그서 성공했제.

-당시 집안 사정은 어떠했나요.

△왜정때라 일본 사람이 기관장이며 학교 교장하고, 면장만 한국 사람이 했제. 경연씨 아버지도 왜정때 면장을 했어. 당시에는 용접기도 없고 쇠붙이도 귀한 때라, 사람들 안 데리고 그 분 혼자 다 맨들었제(만들었지)…….

-군대 가기 전, 젊어서는 무엇을 했나요.

△그 양반이 6.25때, 손재주가 좋아 라디오도 고치고, 무전기도 고쳐주고 하다가, 그래서 그 사람들이 경연씨를 안 죽이고 이용한거여. 좌익으로 찍힐 뻔했지. 이것이 그 사람들(북한군) 도와줬다 해갔고, 그 사람들하고 내통했다 해갔고, 아 뭐냐, 그 빨치산으로 몰리것다 싶어,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군대를 간 거여. 그래갔고 군에서 실력을 발휘한거여. 중령까지 되었제…….

마지막으로 마을에서 비교적 젊은 고등학교 선생님(57세)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아, 그 형님…. 집안 형님이제. 어려서 이 고을 대회에 나가서 상도 타고…. 지앙스런 손자가 한 명 있었는디, 납부금을 못 내가지고, 그 형님이 대신 내 주시기도 하고……. 아버님이 면장하실 때 비행기를 날렸는데, 손을 다쳤다기도 하고, 배도 만들어 가게 했다고 들었지요."

그 선생님은 이어 "형님이 영어회화를 참 잘하시던 마. 그러니까 영어를 하는 내 외국친구가 우리 집에 와 한 2박3일 머물다 간 일이 있는데, 대화가 잘 안통한거여. 우리는 떠듬떠듬하는디, 형님은 술술 말을 하더라구. 아, 그 중위 대위 때 미국에 가 교육 받잖아. 그래서 영어를 잘했는가봐"라면서 말을 마쳤다.

이 같은 이야기를 종합해 볼 때 조 중령은 성전면 생가에서 나무를 깎아 만든 동체에 오토바이 엔진과 직접 만든 날개 등 부품을 부착한 목재 모형 비행기를 제작해, 영풍리 앞 들판 멍석을 깐 논바닥 활주로를 달린 것이 당시에 큰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또 세간에 나도는 조 중령 모친의 태몽을 소개한다. 당시 모친의 친정집은 월출산 아래에 있는 월남사지탑(월남리)이 있는 곳이었는데, 조 중령이 태어날 때 꾼 꿈이 '큰 용이 탑을 돌아서 월출산을 휘어감아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태어난 이가 경연 씨였다고 한다.

군에서 전역 후 여생을 성전면 고향에서 보낸 조 중령의 업적은 지금껏 남아있는 초라한 생가만큼이나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기회에 마을 문중이나 지인 관계자들이 나서 생가복원을 추진하고, 소규모 유물전시관 같은 사업을 벌인다면 후세들에게 나라를 지키고자 애쓰신 선각자에 대한 산 교육도 꾀하고, 우리 고장에 대한 애향심도 북돋우리라는 생각이 든다.

국정넷포터 박주익(cheongja@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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