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임성훈을 최고 MC라 하는가
[마이데일리 =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임성훈의 세븐데이즈' '잘먹고 잘사는 법' '순간포착 세상의 이런일이' '솔로몬의 선택'(SBS), '신TV는 사랑을 싣고'(KBS).. 이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이 한번쯤 봤을 눈에 익은 프로그램들이다. 이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공통점 하나가 있다. 바로 이시대의 최고의 MC로 평가받는 임성훈이 진행자로 나선다는 점이다.
요즘 연예인 출신 진행자가 급증하면서 비어, 은어 사용, 준비 부족에 의한 실수연발, 진행미숙 등 적지 않은 진행자의 많은 문제가 노출되지만 임성훈은 이러한 문제를 비켜나며 30여년을 MC의 전형으로 역할을 하며 최고의 MC로 각광받고 있다.
강산이 세 번이 변했어도 그대로인 사람이 바로 임성훈이다. 프로는 지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늘 같은 모습으로 브라운관을 수놓는 진행자가 있다. 그를 보면 프로의 진정한 체취가 느껴진다. 임성훈.
녹화장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때다. "만능 엔터테인먼트 이본씨가…" '사랑의 스튜디오' 여자 진행자 윤해영이 말하는 다음 순간, "엔터테인먼트는 아니고 만능 엔터테이너이지요, 이본씨?" 기막힌 순발력과 재치이다. 임성훈의 MC로서 진가는 녹화장을 찾으면 이처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MC 임성훈. 1974년 TBC '가요 올림픽'진행자로 나선 이래 2006년 '신TV는 사랑을 싣고''임성훈의 세븐데이즈'등에 이르기까지 30년 넘게 그는 한번도 방송을 쉰 적이 없다. 대중의 취향과 기호, 시청률에 따라 급변하는 방송가 환경에서 프리랜서 진행자에게는 극히 힘든 일이다.
방송사에는 '임성훈 시계' 가 있다. 방송 두시간 전에 정확히 나타나는 그를 두고 나온 말이다. 이같은 부지런함이 바로 그가 MC로서 장수하는 비결. "방송준비 시간이 짧아지면 그때가 바로 내가 방송을 그만두는 때" 라고 말할 정도다. 그는 심지어 돌발상황까지 예상, 연습한다. 제스처도 몇 번씩 미리 반복한다. 이처럼 방송준비가 철저해, 자연스럽고 편한 진행 스타일로 프로그램을 안방에 전달하는 것이다. 방송에 필요한 순발력은 이러한 준비와 그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체득한 노하우를 새로운 프로그램에 변용해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자세에서 나온다. 임성훈은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이 끝나면 잘된 점과 못된 점을 분석하고 기록해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활용한다. MC로서 엄청난 자산이다. 그런 그를 두고 방송사 연출자들은 '바른 생활 사나이'라고 부른다.
방송은 현실적으로 시청률 지상주의가 횡행한다. 방송사 소속의 아나운서 MC들은 시청자의 외면을 받아도 다시 기회가 있지만 프리랜서 진행자들은 시청률이 저조하면 프로그램 개편시 교체되게 된다. 이러한 전쟁터같은 살벌한 방송 상황에서 진정한 프로만이 살아 남는다. "오랜 방송을 했지만 매 프로그램을 맡을 때 이 프로그램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모든 것을 동원한다. 방송은 일회성이다. 그 한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임성훈에게서 프로의 체취가 풍겨나는 대목이다.
어릴 때 꿈은 외교관이었다. 연세대 사학과를 진학한 이유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밴드 활동에 이어 연대 응원단장을 맡으면서 인생의 진로가 바뀌었다. 이런 전력 덕분에 학생 신분으로 1970년대 젊은이 문화의 메카였던 '오비스 캐빈' 생맥주 집에서 노래를 부르게 됐고, TBC 개그 프로 '살짜기 웃어예'의 대학 명물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를 처음 TV에 발탁한 전 KBS PD였던 김웅래 인덕대 방송연예과 교수는 "임성훈씨는 의외 적인 상황에서도 흐름을 잃지 않는 순발력의 귀재"라고 기억한다.
그는 1974년 최미나와 TBC '가요 올림픽' MC로 캐스팅 되면서 인생의 전기를 맞이한다. 당시만 해도 아나운서가 진행자 자리를 독점하던 시대. 연예인 출신 진행자는 충격이었다. 그것도 최초의 남녀 더블 MC 체제였다. 4년 동안 이 프로그램을 이전 진행자들과 달리 파격적이고 자유스럽게 진행해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더불어 '상록수다방 커플' 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 프로그램이 있는 날은 하루종일 방송사 인근 상록수 다방에서 대사와 제스처 그리고 즉흥적인 대사(애드립)까지 연습을 해서 얻은 별명이다. 이후 더블 MC체제가 붐을 일으켰다.
시사주간지 주간한국이 1977년 시청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MC 인기조사에서 임성훈, 최미나가 1위를 차지했는데 2, 3위였던 허참,정소녀, 곽규석, 명현숙 커플을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는 것만 봐도 당시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이러한 인기는 오랜 시간이 흐른 상황에서도 여전했다. MBC가 여론조사기관 갤럽에 의뢰해 2001년 10~70세 4,000명을 대상으로 가장 인기 있는 MC를 조사한 결과 임성훈이 1위로 꼽혔다. 이러한 결과는 인터넷 포탈등이 실시하는 요즘 MC인기 조사에서도 비슷하다.
1970년대 말 여러 방송사가 임성훈 잡기에 불꽃튀는 경쟁을 벌이던 중 KBS는 1979년 '100분 쇼' 라는 대형 쇼의 진행자로 그를 영입했다. 그리고 이후 11년간 KBS의 가요순위 프로그램 '가요톱 10' 을 진행, 단일 프로 최장수 진행자라는 명예로운 기록을 남겼다.
시청자들은 임성훈만큼 변하지 않는 외모와 분위기를 가진 MC는 없다고 말한다. 20년 전 모습이나 지금 분위기나 변함이 없다는 것. "외모가 원래 어려 보이기도 하지만 공백기 없이 늘 방송에 나와 세월의 흐름을 시청자들이 인식하지 못해서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매일 생방송 되는 KBS '전국은 지금' 을 4년(1987~1991년)동안 진행하면서 딱 한번 방송 펑크를 냈다. "아버지가 방송도중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울면서 진행했다. 발인하는 날만 다른 사람이 대신 방송을 해줬다." 그만큼 방송에선 철두철미한 프로였다.
그는 가장 많은 여성 MC와 진행 해 본 남성 진행자이기도 하다. "TV 프로그램에서만 100여명의 여성 MC를 만났다. 그 중에서 처음 시작한 최미나, 호흡이 잘 맞은 왕영은, 그리고 미인 장윤정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토크쇼가 잘 맞는다는 임성훈은 "MC는 말 잘하는 것보다 출연자들이 속에 있는 말을 잘 할 수 있도록 잘 들어주고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되지도 않는 애드립을 하면서까지 튀려는 요즘 젊은 MC들과 정반대. 그는 연예인 출신이면서도 표준어와 반듯한 방송용어를 구사하며 프로그램 성격에 맞게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진중 하게 순발력을 발휘하며 프로그램을 이끈다. 방송가에선 '임성훈이 맡으면 프로그램이 장수하고 인기를 얻는다' 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실제 그가 맡은 모든 프로그램은 최소 2년 이상 지속됐다.
그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 소박한 바람이다. 신혼 여행도 제주도로 가려 했지만 부산에서 방송이 있어 신혼 여행지를 부산으로 변경한 뒤 방송 3시간 뒤에야 호텔에 들어섰던 임성훈이다. 이제 모두 장성 두아들과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는 그에게 지상파 방송사의 PD가 된 아들은 생일카드에 이렇게 적었다. "아버지는 우리의 영원한 영웅입니다."
[이 시대의 최고의 MC로 평가받는 임성훈. 사진제공=SBS]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knba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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