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없는 '유시민 사랑'과 기이한 '당정분리'

2006. 1. 4.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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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욱 기자]

ⓒ2005 오마이뉴스 이종호

5일 청와대 초청 여당지도부 만찬이 있다고 한다. 아마 유시민(사진) 의원 입각을 둘러싼 당내반발과 일부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노무현 대통령의 설득자리가 될 듯싶다. 하지만 그 자리가 노 대통령의 설득도 좋지만 경청의 자리가 될 필요성도 있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쓴다.

지금 유시민 의원의 입각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분란은 유 의원은 물론이고 노 대통령도 쉽게 납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장관 인사는 궁극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이며, 유 의원에 대한 입각반대는 대부분 어떤 논리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기 보다는 (한 가지 논리적인 반대이유가 있다면 <오마이뉴스> 김종배 기자가 '황우석 파문'과 관련지어 유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의 자질을 문제 삼고 있는 정도다) 틀림없이 '감정'에서 나온 반대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감정'은 왜 생기는 걸까? 강준만 교수는 유시민 의원식 정치로부터 감정문제가 왜 발생하는지를 이렇게 진단한 적이 있다.

"유시민 비판자들이 한 가지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은 유시민은 지금 내키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출세나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조국을 위해 강제로 차출당했다고 생각한다. … 유시민이 열린우리당 의장이 된다 해도, 설사 그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그건 조국을 위한 희생이지 그가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그가 다른 정치인들에게 독설을 퍼부을 수 있는 힘도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강준만, <인물과 사상>, 2005년 5월)

완전히 믿기는 힘들지만 강 교수의 진단이 어느 정도 맞다면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유 의원이 자신의 거취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권력욕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자랑하는 노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때문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충성심' 부족하고 이기적인 열린우리당의 다른 정치인들(?)은 단순히 '질투 섞인 감정' 때문에 이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나는 다른 정치인들도 단순히 '감정' 때문에 이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이 정말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라면 유 의원의 입각이 자신들에게 정치적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판단할 경우 그들은 철저하게 '감정'을 버리고 오히려 입각 환영을 외칠 것이다.

그런데 그들 이기적인 정치인들이 의미심장하게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지금 그들 열린우리당 내 '반(反)유시민' 정치인들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있다면 그것은 대체로 유 의원에 대해 '감정'을 가진 유권자도 많아 유 의원의 입각이 자신들에게 불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유시민 입각 논란, 국회의원의 감정 문제일 뿐일까?

▲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비상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이호웅 의원이 `1.2 개각`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밝히고 있다.
ⓒ2006 오마이뉴스 이종호

여기서 거꾸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지금 유 의원의 입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이 정말 그렇게 단순히 '감정'상의 문제일 뿐인가 하는 점이다. 나는 이 문제가 노 대통령의 내각인사ㆍ운영과 관련된 자의적이고 모순적인 헌법해석 문제와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은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인 2005년 1월 4일 첫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총리 이하 각료 여러분들께서 당정협력을 더욱 더 강화해 주고 대통령은 당 운영에 개입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그런 원칙을 유지해 나가겠다. … 그래서 총리 중심의 국정운영은 새해에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 … 그리고 대통령이 특별히 목적이 있는 경우 이외에는 총리의 인사제안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운영해 나가고 있다. 앞으로 국무회의도 원칙적으로 총리가 계속 주재해 나간다. … 장관님들이 '대통령 얼굴도 한번 못보고 뭐 그러느냐'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언제든지 전화를 주시면 제가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서 한번씩 보고 여러분 말씀을 듣도록 그렇게 하겠다."(www.president.go.kr)

노 대통령은 우리 헌법상의 정부형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우선 노 대통령은 '당정분리'의 필요성에 대해 "대통령의 권한집중과 월권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월권'의 폐해를 주장했고 그래서 이 '당정분리'라는 노 대통령의 구호에 동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생각하는 '당정분리'의 모델은 어디인가? 미국식 대통령제다. 대통령의 여당에 대한 '월권'이 없고 때로는 여야를 초월한 '설득'도 가능하다. 자, 그럼 노 대통령은 미국식 대통령제 하의 '당정분리' 원칙에 충실하려 한 것일까? 절대로 아니다. 미국식 대통령제의 가장 큰 특징은 조직과 활동의 '독립성의 원리'에 따라 집행부의 구성원이 의원겸직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이 작은 문제일까? 아니다. 원리ㆍ원칙의 문제다. 우리 헌법이 금지하지 않고 있는 집행부 구성원의 '의원겸직'을 줄기차게 활용하면서 미국식 '당정분리'를 운운하는 것은 정확하게 '표리부동'이다. 아예 집행부 구성원의 의원겸직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표리부동'하게 '당정분리'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차라리 내각제식으로 '조직과 활동'을 '의존성의 원리'에 따라 운영하면서 '당정일체'를 구호로 내세우는 게 솔직하다.

지금 노 대통령과 함께 우리나라의 헌법현실은 큰 혼란에 빠져 있다. 우리 헌법 제86조 제2항은 국무총리는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도 원칙적으로 총리가 계속 주재"하는 것이 옳다고 믿고 있다. 우리 헌법 제88조 제3항에 따르면 분명히 "대통령은 국무회의의 의장이 되고, 국무총리는 부의장이 된다"고 돼 있는데 우리나라의 모든 중요 국정을 심의하는 국무회의 자리에 대통령이 "원칙적으로"! 자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의원겸직 활용하며 미국식 당정분리 운운은 '표리부동'

▲ 새해 첫 국무회의 참석을 위해 회의장에 들어가는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국무총리.
ⓒ2006 청와대 홈페이지

나는 노 대통령이 우리 헌법을 대통령제가 아닌 사실상 이원정부제로 변형하여 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국식 대통령제의 원리에 기초한 '당정분리'를 구호로 내세우고 있다. 또한 그러면서도 그는 행정부 구성원의 국회의원 겸직이 자신의 '당정분리' 논리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기이한 일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지금까지 의원겸직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의원 등의 입각에 즈음하여 다시 이런 헌법적 문제를 특별히 지적하는 것은 충성심 강한 유 의원의 입각파문이 노 대통령의 변형된 헌법운영의 모순을 함축적이고 결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이원정부제'적 헌법운용을 하면서 '당정분리'를 외치고 그 당정분리는 또한 유시민 의원의 입각제안에서 드러나듯 당정분리와 가장 상극적인 '충성경쟁'을 유도하는 것으로 귀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구조적인 측면에서 행정부 구성원의 '의원겸직', 특별히 충성심을 내세우는 의원의 겸직이 '당정분리'와는 맞지 않는 것은 자명하지만 정세균 당의장의 산자부 장관 기용이야말로 '당정분리' 구호를 무색케 하는 또 다른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당대표의 내각기용은 정동영 장관 등도 마찬가지였다. 당의장이 하루아침에 내각을 위해 동원되고 당사자 또한 기꺼이 그것을 수용하면서도 '당정분리'를 외치고 있는 것은 정말이지 염치없는 일이다.

굳이 여러 말 할 것 없다. 내 지적이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잘 정리해놨으므로) 노 대통령이든 누구든 다음과 같이 우기면 될 것이다.

"유시민 의원 같이 "나는 충성심은 있지만 장관을 맡을 능력은 못된다"(<프레시안>, 2005. 11. 24.)고 공개적으로 자신의 충성심을 자랑하는 의원과 당을 꾸려가는 의장을 언제라도 내각에 입각시켜도 다른 의원들은 결코 앞으로 장관자리를 바라보며 그런 충성경쟁을 할리가 없기 때문에 이런 식의 '당정밀착'에도 불구하고 '당정분리'라는 대의명분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국민들도 그렇다고 순진하게 믿을 것이다.나아가 '당정분리'는 대통령제에 걸맞는 원리가 아니고 이원정부제에 걸맞는 원리다. 그리고 우리 헌법도 잘 살펴보면 대통령제가 아닌 이원정부제로 돼 있다. 그러므로 총리가 국무회의를 주재해야 하고 장관들이 "대통령 얼굴도 한번 못보고" 하는 일이 생겨도 큰 문제가 아니다.한마디로 겉으로는 '당정분리'를 외치면서도 안으로는 '의원겸직'을 최대한 활용하고, 공개적으로는 장관 인사권까지 사실상 총리에게 맡기는 '이원정부제'로 헌법을 운용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바로 그 인사에 문제가 생기면 실권을 가진 대통령이 나서 '청와대'에서 만찬으로 해결해가는 것이야말로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을 향해 옳게 정치하는 일이다."

나는 이상과 같은 현실이 헌법정신의 올바른 실현이 아니라고 보지만 노 대통령은 그렇다고 믿는 것 같다. 어쨌든 노 대통령이 유 의원이나 정 당의장의 입각을 결정한다 해도 그것이 '대연정' 제안만큼이나 큰 지각변동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연정이 일으킨 지각변동을 고착시키는 소리 없는 여진 정도는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2006년 새해벽두 선택에 행운 있기를 바란다.

/김욱 기자

덧붙이는 글기자소개 : 김욱 기자는 오마이뉴스 고정 칼럼니스트입니다. 서남대에서 헌법, 법철학 등을 강의하고 있는 헌법 학자입니다.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주체사상을 통한 마르크스적 자유와 평등실현의 법리와 문제점>이며, 저서로는 <영화 속의 법과 이데올로기>, <마키아벨리즘으로 읽는 한국 헌정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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