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이면 공소시효 끝나는 '살인의 추억'..끝내 범인 못잡나

2005. 11. 1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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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항간에 더 알려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끝내 못잡나.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지난 1986년 9월15일부터 91년 4월3일까지 경기도 화성시(당시 화성군) 태안읍일대 반경 3㎞이내에서 10명의 부녀자들을 상대로 성폭행하고 살해한 엽기적인 살인행각이다.

연쇄 사건중 13세된 여중생을 하교길에 살해한 9차(90년 11월15일)도 오는 14일이면 15년의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마지막 10차(91년 4월3일) 60대 노파 살인도 내년 4월2일이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될 전망이다. 세계범죄사에 기록된 이 전대미문사건은 경찰의 자존심을 한 없이 추락시켰고 그동안 숱한 의문과 공포의 대상이 돼왔다.

또 당시 화성일대 여자들사이에서는 범인이 "비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을 좋아한다"며 빨간 색 옷을 기피하는 등의 숱한 화제와 함께 그 명성(?)에 걸맞는 많은 기록도 남겼다.

◇수사상황

=이 사건은 당초 4차사건(86년12월)부터 연쇄살인사건으로 확정짖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다. 당초 그 이전의 사건은 현장보존이나 증거능력 등 모든 것하나 제대로된 수사정황이 갖춰져 있지 않다. 설령 범인이 '내가 살인을 했다'고 했다고 해도 직접적 증거는 없는 셈으로 법정증거인정이 어렵다.

이 사건중 유일하게 검거된 사건은 8차(88년 9월16일)로 사건발생 9개월여만에 윤모(당시 22세)를 검거했다. 엄밀하게 따지면 이 사건은 경찰이 범행 수법,범인의 행동반경 등을 놓고 연쇄사건으로 단정해 수사를 벌여 온것이지 연쇄살인의 범인은 아닌셈이다.

당시 경기도경찰국이 수사본부를 차리고,사건의 중대성을 감안 이례적으로 부국장(경무관)이 수사본부장으로 직접 수사지휘를 맡았다. 그동안 연인원 200만6000여명의 경찰이 동원됐다. 7·8차사건 당시인 88년에는 방범순찰인력인 전경대를 제외한 수사본부인원만 114명이나 돼 태안읍일대에서는 '주민반 경찰반'이 살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경력이 투입됐다. 수사본부에는 당시 경기도내 경찰서에서 차출된 '난다 긴다'하는 베테랑 형사들만 모아 두었다. 범인을 잡기위한 함정수사에 동원된 여경만도 5600명에 달한다.

인원이 많다보니 밥값 또한 대단했다. 하루 이틀만 되도 밥값은 눈덩이 처럼 불어났다.경찰의 수사비가 현실화되기이전이라 당시 수사간부들이 화성군이나 도청 등 행정기관에서 구걸하듯 밥값신세를 졌고,수사본부가 해체된 이후에도 주변식당에서 밥값을 못받았느니 하는 시비가 잇따랐다.

수사실적도 대단하다. 용의자 등 수사대상자만도 2만1000명에 이르고 지문대조수사 4만여명,8∼10차에 처음 도입된 DNA 감정수사 570명,모발 감정수사 180명,기타 범죄검거도 1600여건에 이른다.

8차사건부터는 본격적인 과학수사기법인 DNA분석기법이 국내 처음으로 활용됐다. 살해된 시신에서 남성의 정액을 검출해 분석하는 방법이다. 8차 사건이 단독범행으로 결론이 내려진것도 이때문이다. 당시 우리나라에 분석을 하는 곳이 없어 용의자 샘플을 채취 국립과학연구소로 보냈고,미국에 재차 보내져 분석결과 통지까지는 6개월이나 걸렸다.

현재 9차와 10차 사건 현장에서 범인의 정액을 채취해 DNA분석을 마쳤다.

◇범인 왜 못잡나

=연쇄 살인사건은 팔탄면의 7차 사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도 1호선을 끼고 태안읍을 반경으로 3㎞이내에서 일어났다. 피해자들 모두가 몸이 묶인채 강간당한 상태였고 주로 새벽시간때나 밤 늦은 시간에 이뤄졌다.

지금 연쇄살인사건의 현장은 대부분 아파트나 공장이 입주해 있다.주변 산이 다 깍아져 아파트가 입주하는 등 땅값만도 화성시에서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지역이다.지금은 어디가 어딘지 도대체 구분이 가지 않는다.

단지 당시 수사를 맡았던 대부분의 경찰은 퇴직했다. 따라서 당시 기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한 범인은 키 168∼170㎝ 전후의 약간 마른 체격,당시 25세 가량,혈액형은 B형으로 추정된다는 수사보고가 끝이다.

또 유일한 직접증거인 마지막 9·10차 사건현장 사체에서 체취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지문 몇개와 모발,정액뿐이다. 경찰에서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며 끝까지 범인을 검거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화성수사본부는 지난 96년부터 수사본부장을 화성경찰서장으로 격하 16명이 운영해오다 지금은 수사형사 4명이 전담운영하고 있다.

최원일 화성서장은 "공소시효와 관계없이 끝까지 범인을 추적해 우리경찰에 있어 완전범죄는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화성=김도영 기자 do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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