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 첫 한국인 시각장애 박사된 전영미씨

2005. 9. 3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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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장애인의 건강한 웃음은 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삶을 버거워하는 비장애인들에겐 자신을 한번쯤 추스려 보게 하는 자극제가 된다. 30일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만난 전영미(35)씨의 얼굴에선 환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도쿄대에서 시각장애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인은 그가 처음이다.

일본에 건너온 지 9년 남짓 만에 박사학위를 딴 그의 첫 소감은 "나도 뭔가를 해냈구나"였다. 장애인으로서 대단한 일을 했다는 뜻이 아니다.

힘든 과정을 끝마친 자신이 너무 대견스럽다는 것이다. 그의 박사논문은 시각장애인의 침 시술에 관한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침 시술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학위논문의 핵심이다. 당연한 듯한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전씨는 4년 동안 일본 시각장애인 침구사들의 시술행동을 분석했다.

안마밖에 할 수 없는 현실 항변"불편할 뿐 답답하지 않다"비장애인과 당당히 돕고 살고파

이 논문은 일본과 달리 안마만 허용할 뿐 침·뜸을 시술하는 침구사 자격은 주지 않아 시각장애인의 사회활동을 상당히 제약하고 있는 한국 사회를 향한 그의 항변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는 시각장애인들에겐 희망이 없는 곳입니다." 그는 시각장애인들이 대부분 "공부를 열심히 한들 뭐하겠나. 결국 다른 사람 몸이나 주무를 텐데"라고 자조하며 삶을 쉽게 포기해버린다고 말한다.

1996년 대구대 특수교육과를 졸업하고 맹학교 교사를 할 계획이던 그는 침·뜸 등에 대한 이론과 실기를 확실하게 배우기 위해 직업교육기관인 일본 후쿠오카 맹학교에 들어갔다. 공부 욕심에 쓰쿠바대 석사과정, 도쿄대 박사과정으로 진학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전문 연구자가 돼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환경을 바꾸는 데 앞장서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사과정을 마쳤지만 도쿄대에서 외국인협력연구원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박사논문을 책으로도 펴낼 예정이다.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 비해 일본은 전씨가 공부를 계속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1천만 원에 이르는 점자책 구입비 등이 제공되고 월 약 80만 원의 장애인 연금도 지급됐다. 도쿄대는 1년이 기한인 유학생 기숙사에 그가 계속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해줬고, 도우미 배정도 늘려줬다.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그에겐 큰 스트레스였지만 이제는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시각장애인들끼리 지내는 게 아니라 보통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로 한 이상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주고받는 게 사람 사는 사회 아닌가요.

제 자랑 같지만 제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 주는 것도 없지 않다고 생각해요"라고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가난한 목사 가정에서 1남5녀 중 넷째 딸로 태어난 그는 4살 때 시력을 잃었다. 그는 장애에 대해 자신의 개성이나 특징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며 "불편한 점이 많지만 답답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전씨는 인터넷 쇼핑으로 구입한 옷과 액세서리로 자신을 꾸미고 기숙사방의 내부를 바꾸는 데서 삶의 활력소를 찾는다고 한다. 비록 자신의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글·사진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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