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문학가] 김학철·김사량은?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학철은 보성고보 재학 중이던 18살 때 항일 투쟁에 동참한다는 일념으로 상해로 건너갔다. 3년 뒤인 1938년 국공합작 중국 군사위원회의 원조를 받아 무한에서 조선의용대가 창설되자 그도 여기에 합류했다. 직후에 광복군이 만들어지긴 했으나 병사는 없고 편제만 있는 군대였으므로 조선의용대는 일본군과 싸운 실질적인 조선인 군대였다. 조선의용대는 호가장 전투와 5월 반소탕전 같은 주요 전투를 치른 뒤인 1942년 조선의용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태항산 전투로 한쪽 다리를 잃은 김학철은 해방 직후 단편소설을 발표했으며 미 군정의 좌익탄압을 피해 월북했다. 노동신문 기자 재직시 김일성을 비판하는 글을 실은 것이 계기가 되어 1950년 중국으로 건너가 연변 자치주에 정착했다.
그러나 그의 중국생활도 순탄치 못했다. '20세기의 신화'라는 작품을 통해 일당독재로 치닫는 중국 공산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바람에 10년간 옥살이를 하고 이후 14년간 강제노역을 해야만 했다. 그런 중에도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단 한번도 꺾지 않았다. 2001년 '추도회를 일절 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김사량은 평양 출생으로 동경대학을 졸업했다. 1936년 등단했으며 4년 뒤 발표한 '빛 속으로'는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1943년 자신이 배속돼 있던 일본군 보도반에서 탈출하여 중공 팔로군(八路軍)의 조선의용군 종군기자가 되었다. 45년에는 중국 태항산 전투에 참여했으며 47년 '노마만리'를 발간했다. 해방 후 평양에서 활동하다가 6·25 전쟁 때 종군기자로 나섰다가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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