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은 '용서'받을까

2005. 8. 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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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년 반 만에 기자들과 만나 대선가도 재진입 의지 밝힌 속뜻은? 신라 권력암투 그린 삼한지> 탐독 뒤 지인들에게 선물로 준다는데… ▣ 최익림 기자/ 한겨레 정치부 choi21@hani.co.kr 정몽준 의원(무소속)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지난 2002년 대선 출마 당시 자신이 창당한 '국민통합21'에 출입했던 한 중견기자의 해외연수를 앞두고 환송연을 겸해 마련한 오찬 간담회 자리였다.

차기 대선 킹메이커를 꿈꾸는가 그가 정치권 현안을 소재로 기자들과 만난 것은 거의 2년 반 만이다.

대선 당시 선거운동 마감 1시간 전에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돌발적인 지지 철회 선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뒤 기자들과 접촉을 피해왔던 그가 사실상 첫 기지개를 켠 셈이다.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 2년 반 만에 '마크맨'들과 조우한데다 '원죄' 탓에 다소 의기소침하리라던 기자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예정 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한 그는 특유의 '입심'으로 축구 얘기부터 끄집어냈다.

프리미어리그에 진입한 박지성을 시작으로 박주영, 히딩크 등 '축구 거물'을 이야기 소재로 삼아 10여분 만에 2년 반 만의 '서먹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분위기가 익어가자 정치인답게 그는 대뜸 "고건 전 총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먼저 물었다.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와 관련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고 전 총리를 보면서 2년 반 전의 자신의 처지를 돌아봤음직하다.

당연히 그런 얘기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그는 거침없이 나갔다.

"최근 고 전 총리의 거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누가 되건 나라를 편안히 만드는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본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여당이든 야당이든 고 전 총리와 같은 분을 영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의 이런 발언에 일각에서는 차기 대선에서 '킹메이커'를 하겠다는 의사표현이 아니냐는 분석도 내놨다.

그는 한 발짝 더 나갔다.

"차기 대선은 계층간의 싸움이 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더라"며 향후 선거전에 대한 '기상도'를 제시했고, 지지 철회 직전까지 '러닝메이트'였던 노무현 대통령의 민생정책에 대해 각을 세우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드라이브를 걸면서 정치권의 최대 화두로 등장한 개헌론에 관해서는 "힘을 받는 임기 초반에 개헌이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3불정책으로 국한해 법제화한다는 것은 점잖지 않다.

대입 제도를 바꿀 경우에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와 반드시 상의하도록 대입 제도 자체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지 철회 경위 곧 밝힐 것" 정 의원은 오찬 막바지에 당시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 철회를 선언했던 투표일 하루 전날 정황과 관련한 얘기도 했다.

"평창동 집까지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문도 열어주지 않았던 것은 지금 생각하니 조금 너무했던 것 같다.

" 지지 철회에 대해서도 "나 자신도 당시에 잘했던 일인지, 못한 일인지, 그 일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자주 생각해왔다"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판단이 서면 (그 경위를) 조만간 밝히겠다"고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제 정치를 재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시간도 지났으니까 이제 좀 해봐야죠"라고 답했다.

2007년 대선 전에 어떤 형태건 다시 등장하겠다는 의지를 나름대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은 최근 한 작가가 쓴 대하소설 삼한지>를 탐독했다고 한다.

신라 진덕여왕 사후 피비릿내 나는 권력암투가 전개되는 가운데 화백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왕으로 추대된 상대등(오늘날로 치면 국무총리) 알천이 대승적 차원에서 김춘추에게 왕권을 양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나 지인들에게도 이 책을 선물로 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단 한번의 여론조사로 단일 후보 자리를 양보한 자신의 처지를 빗댄 것으로도 읽힌다.

하지만 대선가도에 '재진입'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무엇보다 '이인제 학습효과'를 경험한 유권자들에게 정몽준 의원이 쉽게 '용서'받을지 의문이다.

이인제 의원은 '경선 불복' 이미지 때문에 지금까지 재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참고로 지난 2003년 1월 발간된 2002년 대선 평가와 노무현 정부의 과제>라는 책에는 2002년 대선 과정과 정 의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1년 내내 후보들의 지지율이 널뛰기하듯 요동쳤고, 대선 1달 전에 여당의 대선후보가 한번의 여론조사로 결정되더니, 선거운동 마감 1시간 전에 돌발적인 지지 철회 선언으로 세계 정치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해프닝을 벌인 당사자." 각계 전문가 400여명의 설문조사와 논평을 담은 책이 이렇게 적고 있는 정몽준 의원이 사실상 킹메이커를 자처하고 나선 지금, 국민은 과연 그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까. 정 의원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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