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시절 흥행 메이커 장미희

2004. 5. 28.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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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스타앨범] 1977년 영화 속 풍경."겨울여자" 장미희의 우수 어린 눈빛과 울음 머금은 목소리에 수백만 청춘은 넋을 놓았다. 스치는 바람에도 날아갈 듯 야리야리한 그녀 앞에서 감히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남성은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었다.

2004년 TV 속 풍경.〈흥부네 박터졌네〉에서 노처녀 장미희는 할아버지급 아저씨의 돈주머니를 노리고 작업에 들어간다. 과연 그녀에게도 청순가련한 시절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푼수연기가 자연스럽다.

27년의 세월이 공주과의 그녀를 푼수과의 아줌마로 변하게 했을 터. "무서운 건 시간밖에 없다"는 말을 입증하듯 그녀의 연기는 이제 거침없다. 가벼운 농담에도 볼을 붉히며 돌아서던 과장된 수줍음의 거울 속 그녀는 가고 없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운 처녀" 못잖은 "귀여운 중년"으로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

70~80년대 흥행메이커 장미희. 〈겨울여자〉에서 그녀는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애틋한 애정연기로 58만6천 명이라는 구름관중을 모았다. 공전의 히트작으로 〈겨울여자〉의 이 기록은 13년이 지난 1990년 〈장군의 아들〉에 의해 깨졌다. 그때는 무슨 일이(1977년)백건우 부부 파리로 탈출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부부가 피랍 중 파리로 탈출했다.

당시 북한은 남한 사람들에 의해 "북괴"로 불린 적군이었다. 해외여행이 쉽지도 않았지만 여행 전 필수과목이 안기부에서 "북괴"에 대해 교육받는 일이었다. 여행 중 북한 사람을 만나면 도망가라는 식이었는데 북한 사람도 그런 교육을 받았는지 남북한 사람들은 만나면 외면하기 바빴다.

백건우씨의 피랍으로 "천인공노"할 북에 대한 교육은 더욱 강화되었고 남북은 서로 무서워하며 벌벌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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