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헌법개정 해설 적화통일 포기 속단

1992. 11. 2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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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문제조항 삭제 불구 당규약 확인 과제경제난 극복위해 경제개방.산업발전 조항 신설

(서울=연합(聯合)) 북한의 이번 헌법 개정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그동안 남북간에 근원적 불신을 야기시키는 것으로 지목돼 왔던 북한 헌법상의 적화통일 노선 관련 조항이 수정됐다는 것이다.

북한은 종래 헌법 제5조에서 북한에서의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 나아가 `전국적 범위에서의 평화적 통일'을 명시했는데 과거 동족 상잔의 비극을 경험한 남한측에게는 `전국적 범위에서의 평화적 통일'이 `전국적 범위에서의 적화통일'을 위장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온 실정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그같은 문제 조항을 수정, "전국적 범위..." 운운의 논란거리를 삭제하고 대신 지난 72년 7.4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민족통일 3원칙을 삽입함으로써 표면상 북한 헌법에서는 적화통일 노선이 사라지게 됐다.

물론 이것을 북한이 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한 것으로 보기에는 아직은 이르다. 왜냐하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조선노동당의 영도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제11조)는 조항은 여전히 북한이 黨우위의 체제에 놓여 있으며 헌법 또한 아직도 적화통일 노선이 명기돼 있는 黨규약보다 하위 개념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黨규약은 "조선노동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 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고 규정, 전국적 범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공산화까지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했는가 여부는 黨규약에서도 확인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의 남북 기본합의서 발효, 9월의 부속합의서 발효 및 공동위 가동 합의 등 일련의 남북간 화해와 협력 추세에 북한이 긍정적으로 대응해 왔다는 점과 관련지어 볼 때 제5조의 개정도 긍정적인 변화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북한은 또 국가 권력기관의 권한 조정, 입법기관인 최고인민회의 권한 강화, 주석 권한의 약화, 주민 복지 향상 조항 신설 등을 통해 주석 1인 독재 체제라는 오명을 씻고 인민 대중을 중요시하는 원론적 민주주의에 한 걸음 다가선 것도 긍정적 변화로 평가되고 있다.

종래 최고인민회의에서 선거될 뿐 어떠한 견제도 허용되지 않았던 주석에 대해 신헌법은 최고인민회의에 의한 소환을 규정(제91조)한 것은 북한 권력기관간의 견제와 균형면에서 볼 때 명목상으로나마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주석이 자동적으로 전반적 무력의 최고 사령관, 국방위원회 위원장직을 겸임하게 돼 있는 조항을 삭제하고 국방위원회에 관한 조항을 따로 신설해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선거, 소환하게 한 것도 주석의 권력을 분산시킴과 동시에 최고인민회의의 권한을 상대적으로 강화시킨 것이다.

주석이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직을 겸직하게 돼 있는 조항이 삭제됨으로써 주석 아닌 金正日이 군 최고사령관직을 맡고 있는 종래의 법적 모순도 해소됐다고 하겠다.

신헌법에서는 국방위원회에 관한 조항을 신설, 최고군사지도기관으로서 헌법의 국가권력체계상 주석 다음의 서열을 차지하도록 했다.

이는 군사우선 정책이 여전히 중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종래 중앙인민위원회가 갖고 있던 국방건설 지도, 중요 군사간부 임명 또는 해임, 장령 이상의 군사칭호 수여, 유사시 전쟁동원상태와 동원령 선포 등의 막강한 군사 권한을 위임받 았다.

국방위원회 또한 최고인민회의에 책임을 지도록 돼 있으며 국방위원회에 부여된 권한이 주석이 수위로 있는 중앙인민위원회에서 이양된 점 등에서도 주석 1인에게 집중된 권한이 분산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와함께 신헌법이 법은 국가관리의 기본무기이고 모든 기관.기업소.인민은 법 을 존중하고 엄격히 준수.집행할 의무가 있다(제18조)는 조항을 신설하는 등 법에 의한 통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 점차 법적.제도적 장치에 의한 통치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신헌법에서 또 한가지 주목되는 점은 인민 복지 향상과 경제적 난관 극복을 위한 조항을 신설했다는 점이다.

신헌법은 제25조에서 모든 근로자에게 "먹고, 입고, 쓰고 살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마련한다"고 선언하고 있으며 대학과 전문학생에 대한 장학금 지급(제47조), 모든 근로자들이 학습할 수 있는 사회교육강화(48조), 근로자들의 정신적.육체적 발전 욕구 충족을 위한 사회주의적 문화시설 완비(제53조), 환경보호 대책 수립으로 인민들의 문화위생적인 생활조건과 노동조건 마련(제57조), 종교건물 건축.종교의식 허용으로 신앙의 자유보장(제68조) 조항을 두었다.

종교 활동의 자유와 관련, 북한은 종래 헌법에서 `반종교 선전의 자유' 조항을 삭제한 대신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질서를 해치는 데 이용할 수 없다'는 조항을 만들어 여전히 제한적인 수준에 묶어놓고 있다.

경제난 타개를 위한 신설 조항은 대외적 경제개방 정책 추진과 대내적 산업기술발전 촉구 두 부문에 걸쳐 있다.

외국인의 합법적 권리와 이익보장규정(제16조), 자유.평화.친선을 대외정책의 기본원칙으로 천명(제17조), 외국인.외국법인과의 기업합영과 합작 장려(제37조) 등은 대외 경제개방 정책 추진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한 것이고 인민경제의 현대화 과학화 강조(제26조), 모든 경제활동에 있어 기술발전 문제를 우선 고려(제27조), 농촌기술혁명을 통한 농업의 공업화 추진(제28조), 과학기술발전계획 수립 및 과학자와 생산자들간의 창조적 협동강화 촉구(제51조) 등은 대내적으로 기술 혁명을 통해 경제난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긍정적인 변화와는 달리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앞서 주체사상을 강조한다거나(제3조) 대외 기본정책에 있어서도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국제주의 원칙보다는 자주성을 내세우는(제17조) 점 등은 앞으로도 북한이 제한적인 개방은 할지라도 근본적으로는 주체사상을 기본으로 한 폐쇄체제를 유지시켜 나갈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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